'Dokdo Campaign'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10.10 독도의 접안시설
  2. 2015.07.17 독도의 등대
  3. 2015.07.07 독도의 물골
  4. 2015.06.29 독도우표 (1)
  5. 2015.05.10 독도의 공시지가
  6. 2015.03.31 독도의 지명 변천사
  7. 2015.03.14 독도의 일반 현황
Dokdo Campaign2015. 10. 10. 12:54



독도의 접안시설은 1996년 2월 공사를 시작했다. 

1996년 2월 9일, 일본 외무성은 주일한국 대사를 불러 독도 접안시설 건설에 항의했으나 우리 정부는 망언으로 규정하고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97년 11월, 길이 80m, 폭 33m, 높이 14m, 진입로 146m의 500톤급 선박 1척이 접안 가능한 접안시설이 준공되었다.

2006년 4월에 대형 선박 접안 시 안전을 위하여 상부에 길이 40m 높이 1m에 이르는 보강 공사를 하였다.

2005년부터 독도 입도신고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입도가 가능하고 일본인 등 외국인도 독도관리사무소에 입도신고를 하면 입도가 가능하며 약 30여 분 동안 접안시설에 내려 독도를 관람할 수 있고, 허가 시 체류하며 동도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1995. 12

 독도 접안시설 공사 계약 체결

 1996.  2

 독도 접안시설 착공

 1997. 11.  6

 동도의 접안시설 준공

 1997. 11. 21

 서도의 접안시설 및 어업인 숙소(2층, 약10.89㎡,25명 수용)1동 준공

 2002.  5. 27

 동도와 서도의 접안시설 보강 공사(~03.5.26)

 2005.  4

 동도 접안시설 보강 공사(길이 40m, 높이 1m) 

 2005.  9. 22

 동도의 접안시설 방충재 추가 설치, 태풍 매미로 인한 어업인 숙소와 선가장 보수 및 보강

 2010.

 서고 어민숙소 확장 공사

▲ 독도의 접안시설 및 어업인 숙소 연혁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접안시설  (0) 2015.10.10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Dokdo Campaign2015. 7. 17. 21:39


독도 등대 설치 논의는 1954년 5월 한국산악회의 건의와 7월 25일에 국회 해양주권 시찰단이 독도를 답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54년 8월 10일 동도 북쪽(구 선착장) 해발 5m 정도의 암반위에 10m 높이의 사각형 철탑으로 건립되어 최초로 불을 밝혔다.


같은해 8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독도 등대 시설 보강을 위한 「독도에 설치된 등대에 관한 건」이 의결되었다. 동도 해발 124미터 지점까지 통로를 새로 만들며 공사가 시작되었고 1955년 7월 8일에 새로운 독도 등대가 건립되었다.


현재 동도 정상부에 자리 잡은 독도 등대는 1998년 12월 해양수산부가 건립한 등대로 등대원 숙소와 관리실을 갖춘 유인 등대다.

포항지방해운항만청이 관리하고 2개조(3명으로 구성)가 1개월씩 교대 근무하고 있다.


등대의 표지부호는 K(― · ―), 광달거리는 지리적 25마일(46km) 광학적 41마일(18km), 10초에 1바퀴 회전한다.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접안시설  (0) 2015.10.10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Dokdo Campaign2015. 7. 7. 21:46

독도의 서도 서북방에 있는 천연동굴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샘이 있는데, 이곳이 물골이다.


1954년 일본의 독도 침략을 막기 위해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에 갔을 때 첫 상륙지이자 첫 주둔지였던 물골은 독도수호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독도의용수비대원은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자주 출몰했으며 경고 사격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8월 26일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보낸 구술서를 통해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서도 해안 동굴로부터 갑작스런 총격을 받았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틀 후인 8월 28일에 동도 정상부에 독도경비 강화를 위한 독도경비초사가 건립되자 독도의용수비대는 주둔지를 동도로 옮겼다.


그리고 1963년 독도에 거주했던 최초의 민간인, 최초 주민 최종덕씨도 물골에 터를 잡고 주거시설과 샘솟는 물을 저장하기 위한 급수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1966년 11월 경상북도는 어민의 안전보호와 독도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물골 입구에 담을 두르고 급수조와 어민보호소를 설치했으며 독도경비대에 담수화시설이 설치되기 전까지 물골은 독도경비대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는 2004년에 최초로 물골 수질검사를 실시했는데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에 먹는 물 46항목 검사를 의뢰하여 총 6개 항목이 기준을 초과했다. 그 주요 원인은 해수 유입, 동식물부패 등이었는데 ‘독도수호대’의 보호 조치 요청으로 울릉군에서 물골의 급수조에 뚜껑을 설치하고 갈매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망을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설치하였다.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접안시설  (0) 2015.10.10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Dokdo Campaign2015. 6. 29. 21:51

우리나라 최초의 독도우표는 1954년 9월에 2환(500만 장, 평판 자색) 5환(500만 장, 평판 청색) 10환(2000만 장, 평판 녹색) 3종이 발행되었다.



일본은 외교문서를 통해 한국의 우표 발행을 항의하고, 독도우표를 붙인 우편물을 반송하였다. 

우편물은 만국우편연합(Universal Postal Union)의 규정에 따라 국내 또는 국제사회에서 교환이 이루어진다. 

한국정부는 국제협정 위반이라며 항의했다.


2004년 1월 16일 정보통신부는 4종으로 구성된 독도우표를 56만 장 발행했는데, 1인 1매로 판매를 제한할 정도로 품귀 현상이 일었다.


2004년 4월 18일 북한이 독도를 주제로 하는 ‘조선의 섬 독도’ 우표(3원, 12원, 106원)를 발행하였는데, 독도수호대가 발행한 독도사진집의 독도 사진을 사용했다.


[상세내용]

○ 1954년 9월 15일 대한민국 체신부에서 2환(5백만 장, 평판 자색) 5환(5백만 장, 평판 청색) 10환(2천만 장, 평판 녹색) 3종을 발행했는데 한국조폐공사에서 인쇄했다. 도안은 강호석 씨가 했는데 2환과 5환짜리는 탕건봉,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를 그렸고 10환짜리는 서북방향에서 바라본 독도를 그렸다.

1954년 11월 29일 일본 정부는 외교문서로 '한국정부가 독도가 한국땅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고 항의하고, 독도우표를 검게 칠해 배달하거나 한국으로 반송하도록 결정하였다. 한국정부는 만국우편연합(UPU, Universal Postal Union) 규정 위반이라며 항의하였다. 


○ 2002년 8월 1일 정보통신부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독도와 안동차전놀이를 를 담은 '내고향경북특별' 우표(190원, 90만 장)를 발행했다. 


○ 2004년 1월 16일 정보통신부는 독도의 갯메꽃, 왕해국, 슴새, 괭이갈매기를 담은 '독도의 자연'(4종 각 56만 장, 각각 190원)을 발행했다. 슴새를 그린 우표에는 서도와 어민 숙소가 그려져 있는데 어민숙소는 1997년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독도우표 발행 소식이 알려지자 고이즈미 총리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우표 발행 중단을 요구하였다. 일본 정부의 항의는 외교 문제로 확산하였고 독도 우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정부는 1인 1매로 판매를 제한하였고 우표를 사려는 줄이 새벽부터 이어졌다.

광화문우체국에서는 새벽에 도착한 시민에게 번호표를 나눠줄 정도로 관심이 높았고, 판매개시 몇 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독도수호대는 이 우표를 붙여 일본정부에 항의서를 발송하였는데 반송 또는 회신은 없었다.


○ 2004년 4월 18일 북한 조선우표사에서 '조선의 섬 독도'2종을 발행하였다.

1종은 팔도전도(3원) 서도(12원) 동도(106원) 그리고 해국과 팔도지도를 담은 4장의 우표로 구성되었고, 다른 1종은 독도전경(116원)과 독도등대 팔도전도를 담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우표들은 독도가 역사적 견지에서나 지리적으로 볼 때 불가분의 조선 땅이며 앞으로도 영원한 한민족의 땅이라는 것을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독도 우표 발행의 의미를 밝혔다. 


독도전경은 독도수호대가 발행한 독도사진집 『독도』(2000년 6월 10일 발행, 작가 김관중)의 사진(90~91쪽)을 사용했다.

그러나 북한 우표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다.

통일부가 우표에 찍힌 '주체'가 '헌법상 영토조항과 배치될 우려가 있으며 북한의 체제 선전적 요소 포함"하고 있다며 반입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독도수호대는 '2002년에 겨울방학특선 북한우표전에서 '주체'가 찍힌 '조선보석화' 시리즈 우표가 전시되었고, 다른 북한 우표가 유통되고 있다.'며 통일부에 반입 거부 이유를 문의하였다. 통일부는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어 정부가 반입 승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조치하였으며, 형평성 문제도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하였다'며 반입 거부 이유를 밝혔다.


2005년에 조선우표사는 독도전경(97원)과 술패랭이꽃(3원), 갯까치수염(50원), 바다사자(3원), 괭이갈매기(12원)를 2장씩 담은 '독도의 생태환경' 우표를 추가 발행했다.

2005년 5월에 이르러 북한 우표는 홍콩과 한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금강산에서도 판매가 시작되었다.


○ 2004년 10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의 독도 우표 발행에 항의하며 독도우표를 발행했다.

80엔 우표를 중심으로 동도를 '여도'로 서도를 '남도'라고 쓰고 '竹島 TAKESHIMA'라고 쓴 항공사진, '일본해 Sea Of Japan'이라고 쓴 독도 평면 이미지 그리고 일본열도와 독도 위치와 주소를 쓴 그림을 담았다. 


○ 2005년 3월 강원체신청은 독도수호운동에 동참하기 위하여 단종문화제와 15회 영월우표전시회 기념행사의 하나로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기념 엽서첩’을 발행하였다. 이 엽서첩은 총 4종으로 독도지도, 독도해국, 서도, 괭이갈매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엽서첩 외에 '독도 나만의 우표'를 발행했다.


○ 2005년 4월 11일 경북체신청은 시마네현의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제정에 항의하고 독도를 홍보하기 위해 '독도사랑 나만의 우표'(전지, 7천5백 원, 5천 장) '독도지키기 고객 맞춤형 엽서'(10만 장)를 발행했다.

'독도사랑 나만의 우표’ 10종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보여주는 고지도, 일본문서 등 고증 사료와 독도의 사진, 야생화 등을 태극기 우표와 함께 도안하여 전지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 우표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1531년)와 프랑스 지도학자가 제작한 조선왕국전도(1735년), 일본태정관문서(1877년) 등의 사료를 담고 있다. 엽서 10종은 동도와 서도의 전경 등 독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다.


○ 2005년 4월 울릉우체국에서 독도사랑 우표첩(1만 부, 6천 원) 발행하여 28일부터 판매하고 있다.

독도의 연혁, 독도의 명칭 변경사, 독도를 지킨 사람들, 독도의 일반 현황을 소개하고 독도의 주요 섬과 바위를 담았다.

표지에는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의 서명을 함께 실었다.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독도의 일반 현황  (0) 2015.03.14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송파구 고용노동부 동부지청 국민세금이 아깝다 +++

    ++++송파구 고용노동부 동부지청 국민세금이 아깝다 +++




    송파구 고용노동부 동부지청 3층 2번 컴퓨터 2달째 고장이라고 수리도 안하고 사용불가 상태다




    고용노동부 동부 지청 관리가 개판이다 고용노동부 동부지청 최고 책임자는 뭐하는지 정말 한심하다




    대한민국 관공서중 이런 곳은 처음본다 국민세금이 아깝다




    한심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민 세금 낭비하는 이런곳 개혁하기바란다




    \\\\\\\\\\\\\\\\\\\\\\\\\\\\\\\\




    송파구청장은 주거급여 처리기간 신속하게 개선하기 바란다




    송파구 주거 급여 신청해서 입금까지 3개월 걸린다 일처리가 다른 지역보다 너무 늦다




    송파구청장은 다른 지역보다 너무 늦게 처리되는 주거급여 신청에서 입금까지 신속하게 기간을 개선하기 바랍니다




    송파구청장은 주거 급여 취지에 맞게 주거 급여 신청에서 입금까지 신속하게 처리기간을 개선해기 바란다




    송파구는 다른 지역보다 늦은 3개월씩이나 걸리면 정말 급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돕기위한 주거 급여에 불만과 비판이 생긴다




    좋은 약도 시기를 놓치면 병이 악화된다 송파구는 잘하고도 욕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종교 사기치는놈들한테 사기 당해서 송파구 오금동 고시원에서 거주하면서 직접 신청한 사람이다 (경험상 전지전능한 창조신은 없는게 확실하다 )




    주거급여 처리기간이 늦은 이유 물어보니 송파수 인구수가 많고 인력이 부족해서 다른지역보다 처리기간이 오래 걸린단다 너무 한심한 변명이다




    송파구청장은 인원이 부족하면 인원보충을해서 신속하게 개선하기 바란다




    송파구 인원이부족하면 송파구청 옆에 송파구 일자리센타에 10 여명 근무하는데 하루 방문자수 열명도 안되는것 같더라




    송파구청장은 이런 한가한 부서 인원들 보충해서 일처리하면 세금 낭비도 없고 다른 일처리도 신속하게 처리할수있다 --송파구갤러리 배현진갤러리ㅍ종교갤러리--

    2020.10.16 17:35 [ ADDR : EDIT/ DEL : REPLY ]

Dokdo Campaign2015. 5. 10. 19:54

1999년까지 ‘독도’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공시지가가 산정되지 않았으며 독도리가 신설된 2000년부터 공시지가가 매겨졌다.

 

2000년 3월 20일, 울릉군의회는 독도리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행정구역변경과 함께 독도 공시지가 산정을 요청하는 청원을 의결하였다.

일본은 이미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토지대장에 등재하고 공시지가도 매겼다는 사실에 대한 대응차원에서였다.

 

독도의 공시지가는 2000년 6월 30일 2억6292만1116원으로 최초 공시되었으며 매년 4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 공시지가 열람 및 의견 제출기간을 거쳐 확정된다.

 

2014년 1월 1일 기준으로 조사·산정한 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독도 전체 공시지가는 35억4천86만원으로 2013년 23억8천395만원보다 48.53%(11억5천691만원) 상승했다.

 

2014년 1월 1일 기준
최고 지가 - 독도리 27번지(잡종지·동도선착장) 외 1필지로 ㎡당 680,000원.
최저 지가 - 독도리 20번지(임야) 외 1필지로 ㎡당 1천500원.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독도의 일반 현황  (0) 2015.03.14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Dokdo Campaign2015. 3. 31. 09:37

독도의 지명 연혁(자료 독도박물관)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왔다.

 

지  명

내  용 

우산도

(宇山島)

512년

독도의 명칭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

조선 태종 때 부터 '우산'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나옴.

「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옛 문헌 속에 동해상의 두 섬을 우산(宇山)과 무릉(武陵) 혹은 우산과 울릉 등으로 표현하고 있어 독도를 '우산'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음.

독도는 천산(千山), 간산(干山), 자산(子山) 등으로도 표기됨.

삼봉도

(三峰島)

(1476년)

 조선 성종 때 사용한 명칭.

「 성종실록」(1476년)에는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나란히 있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려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작은 섬이 있는데 사방 바닷물이 통한다."라고 하여 지근의 독도 모습을 기술.

작은 섬과 암석은 동도와 서도 사이에 무수히 흩어져 있는 바위들을, 복판섬은 서도를, 복판 섬 서쪽의 작은 섬은 지금의 탱크바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

가지도

(可支島)

(1794년)

 1974년(정조18년)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의 울릉도 보고서에 "갑인년 4월 26일에 가지도(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可支漁)가 놀라 뛰어나왔다."는 내용에서 확인.

'가지어'는 물개의 일종인 '강치'의 우리말인 '가제'를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가지도'란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라는 뜻.

실제로 독도에는 '강치'가 많이 서식하였으며, 서도 북서쪽에 '큰가제바위'와 '작은가제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음.

석도

(石島)

(1900년)

 석도는 대한제국이 1900년(고종 37년) 10월 25일에 칙령 41호에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울도의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및 석도(石島)'로 규정하면서 처음 등장.

여기서 죽도는 현재의 울릉도 근방의 작은섬 '죽도'이고 석도는 '독도'를 가르킴.

석도가 독도를 지칭하는 것은 석도의 한글 표현이 '돌섬'이고, 돌의 전라도 사투리가 '독'인 점을 감안하면 석도가 독도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음.

독도

(獨島)

(1906년)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일본군함 나이타카(新高)호의 1904년 9월 25일자 보고에 의하면, "리앙코르트 바위를 한국인들은 '독도(獨島)'라고 쓰고, 일본 어부들은 '리앙꼬도(島)'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어 독도하는 명칭은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독도의 일반 현황  (0) 2015.03.14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Dokdo Campaign2015. 3. 14. 22:36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는 대한민국이 소유하고 있으며 해양수산부가 관리하고 있다.

 

■ 독도의 지리적 위치
   ○ 동도 : 북위 37도 14분 26.8초, 동경 131도 52분 10.4초
   ○ 서도 : 북위 37도 14분 30.6초, 동경 131도 51분 54.6초

 

■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
   ○ 국방 : 군사적 요충지
   ○ 외교 : 해양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
   ○ 어업 : 동해안 어업의 전진기지
   ○ 자원 : 천연자원의 보고

 

■ 지리현황 2005년 6월 20일 정부 합동고시
   동북아의평화를위한바른역사정립기획단고시 제2005-2호, 행정자치부고시 제2005-7호,
   건설교통부고시 제2005-164호, 해양수산부고시 제2005-30호

면적

전체

187,453

둘레

전체

5.4 km

동도

73,297

동도

2.8 km

서도

88,639,

서도

2.6 km

부속도서

25,517

구성

동도,서도, 89개의 부속 섬

높이

서도

168.5m

평균해수면

16cm

동도

98.6m

동도와 서도 거리

151m

거리

울릉도-독도

87.4 km(47.2 해리)

죽변-독도

216.8 km(117.1 해리)

죽변-울릉도

130.3 km(70.4 해리)

독도-오키섬

157.5 km(85.0 해리)

위치

동도 북위 37° 1426.8, 동경131° 5210.4

서도 북위 37° 1430.6, 동경131° 5154.6

 

∴ 시마네현-독도 : 220km

 

※ 정부합동고시 이전까지 정부기관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여 독도의 지리정보가 통일되지 않았다.


독도수호대는 2001년부터 독도지리정보 표준화 사업을 시작, 2005년에 설립된 바른역사정립기획단(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표준화 사업을 제안했다.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은 해양수산부, 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와 함께 표준 현황을 수립, 2005년 6월 28일에 고시하였다.

 

 

독도표준현황 고시가 이루어지기 까지...
독도수호대는 2000년 3월에 출범했다. 독도의 모든 것을 알아야 했고 표준현황은 기본 정보였다.
"울릉도-독도 거리 92km" 정부는 물론 대부분 이렇게 쓰고 있었지만 기관마다 수km의 차이가 있었고, 좌표는 제 각각이었다.
독도의 주권국인 우리나라가 기본 좌표마저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현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독도정보표준화" 사업은 독도수호대의 기본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리정보의 표준 기관인 국립지리원(현 국토지리정보원)의 정보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국지적 좌표체계를 이용한 지도제작이 WG84 등 세계 단일 좌표체계로 바뀌어서, 새로운 지도가 나올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독도 측량 및 수치지도 제작> 사업보고서가 완성되면서 독도 표준 현황이 새로 수립되었다.
독도수호대는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에 표준현황 사용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기관은 거의 없었고, 여전히 비표준 자료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였다.


국가 표준기관의 데이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정부기관이 그만 큼 독도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국립지리원의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률적 근거를 제시했지만 우이독경이었고, 교과서 집필시 원용하는 자료를 정부기관이 사용하지 않는 현실은 계속되었다.

 

2005년 3월, 시마네현이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였고, 우리 정부는 독도전담 기구 설치를 발표했다.
현 동북아역사재단의 전신인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되었다. 기획단은 독도수호대 등 대일과거 단체에 현안문제와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수시로 협의를 하고, 각 단체별로 우선 처리해야하는 사업을 제안 받았다.
독도수호대는 첫 번째 사업으로 독도 표준현황 제정을 제안했고, 기획단은 이를 받아들여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행정자치부와 함께 표준화 사업을 시작했다.


우여곡절끝에 표준안이 수립되었고, 기획단은 합동고시를 앞두고 독도수호대에게 표준안에 대한 최종 의견을 구했다.
일부 문제(이것은 나중에 따로 정리)가 있었으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만들어낸 표준안이라는 데에 의미를 두고 수용했다.


2005년 6월 28일, 정부합동고시로 표준현황이 관보에 고시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 현황이 이것이다.
표준현황과 함께 독도 지명 표준화 사업이 이어졌고, 다음해 관보를 통해 고시되었다.

표준현황이 제정.고시된 이후 동아지도 안동립 대표는 고시 내용을 그대로 담은 독도 지도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인쇄일을 고시 이전인 5월로 했다.


이유가 뭘까?
독도수호대는 안 대표에게 출처를 물었는데 모두 자기가 직접 생산해 낸 정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도 표준 현황은 일개 지도 제작업자가 생산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측량의 기준이 되는 기준점 설정은 국가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액의 예산은 물론 최첨단 장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안 대표는 심지어 독도 표준 지명을 자기가 정리했는데, 국가가 나중에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사실 관계 확인도 하지 않고 안 대표를 '제2의 김정호'라도 되는 듯 소개하기 시작했고,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안 대표의 주장을 그대로 방송했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초로 정부 기관이 합동으로 생산해낸 정보가 일개 지도 제작업자의 공으로 둔갑되기 시작했다. 독도수호대는 안 대표와 직접 통화를 하며 독도를 위한다면 더 이상 허위의 주장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부기관이 합동으로 생산해낸 정보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대표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결론적으로 안 대표는 국가가 만들어낸 성과물을 개인의 공적으로 둔갑시켜 자신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심지어 국가가 자기 회사로 쳐들어와 독도 지도를 가위로 모두 잘라버렸다는 주장을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 마디로 자신은 독도를 위해 헌신 하는데 국가가 자신의 독도 운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교과서도 발행 했는데 임의의 지명을 교과서에 실었다. 독도수호대는 다른 출판사도 정체 불명의 지명을 수록한 사실을 확인하고 교과부에 시정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http://cafe.daum.net/daumtokdo/2tGy/1215

교과부는 각 출판사에 독도수호대의 공문을 보내 교과서 집필시 참고하도록 했다.

현재 안 대표는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독도수호대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응형

'Dokdo Campaig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의 등대  (0) 2015.07.17
독도의 물골  (0) 2015.07.07
독도우표  (1) 2015.06.29
독도의 공시지가  (0) 2015.05.10
독도의 지명 변천사  (0) 2015.03.31
독도의 일반 현황  (0) 2015.03.14
Posted by 김병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